일본어에서 온 단어들

이글루스에서 번역어 논쟁이 좀 있는 모양입니다. 한국 사람이 한국말로 Ge을 읽을 때 게르마늄으로 읽어야 하나, 저마늄으로 읽어야 하나? 바꿔 말하면 일본어와 영어 둘 중에 어떤 언어를 따를 것인지에 대한 논쟁입니다. 마침 이에 관련된 글을 읽고 있었기에 여기에 인용합니다.[1]

조금만 예를 들어본다면 테쯔가쿠(哲學철학), 추우쇼오(추상), 캬쿠타이(객체), 칸넨(관념), 메이다이(명제), 코오사이(공채), 쿄오산(공산), 킨유우(금융), 세이토오(정당), 시혼(자본), 기카이(의회), 시칸(사관), 코쿠사이(국제), 덴포오(전보), 겐리(원리), 겐소쿠(원칙), 카가쿠(과학), 유우키(유기), 무키(무기), 겐소(원소), 분시(분자), 겐시(원자), 코오센(광선), 에키타이(액체), 코타이(고체), 키타이(기체), 센이(섬유), 온도(온도), 신케이(신경), 비주쯔(미술), 켄치쿠(건축), 지치(자치), 다이리(대리), 효오케쯔(표결), 히께쯔(부결), 키노오(귀납), 사요쿠(좌익), 우요쿠(우익), (중략) , 요오소(요소), 시료오(자료) 같은 단어들이 그렇다.

귀찮아서 뒤에 있는 것들은 한자어를 따로 쓰지 않았습니다. (인용문에 보이는 강조는 제가 했습니다. 원문에는 없습니다.)

위의 단어들은 일본인들이 외국어를 번역하다가 만든 것들입니다. 하지만, 다음 단어들은 진짜 일본 단어들이 한자를 통해 수입된 경우입니다.[1]

조합, 견습, 엽서, 입구, 가출, 출구, 내역, 할인, 하물, 취소, 입장, 조립, 차압, 선불, 대절, 대부, 수속

위에서 봤듯이 현대 한국어에는 일본어의 잔재(?)가 매우 많습니다. 따라서 게르마늄을 일본어의 잔재로 비판하려면 위의 것들도 같이 비판해야죠.

하지만, 한 가지 더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산자부가 잘못한 걸까요? 전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게르마늄 비판과 과학 비판이 다른 점이 있습니다. [과학은 언뜻 들으면 외래어가 아닌 한국어로 인식]되지만, [게르마늄은 외래어라고 인식]됩니다. 그래서 국제 학회에서 Na를 Sodium으로 읽지 않고 나트륨이라 읽을 수 있다는 겁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국제 학회는 영어를 공용어로 씁니다. 영어로 말할 때는 영어 규칙을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저마늄을 혀 조금 굴려서 발음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사용하는 외래어를 헷갈리지 않는 쪽으로 맞추는 것이 맞습니다. 안 바꾸면 학회 나가서 이야기할 때 괴롭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전, 위와 같은 일을 없애기 위해, 산자부의 이번 결정에 찬성합니다.[2]

물론 게르마늄이라고 읽는다고 잡혀가는 건 아니니, 게르마늄으로 읽고 싶으면 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노력해서 저마늄이라고 읽는 게 낫지 않나 싶습니다.

[1] 고종석,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 인물과 사상 8
[2] 산자부에서 바꾼 단어들을 가장 많이 접할 사람들은 이공계 출신들입니다. 일반인들은 게르마늄이나 나트륨과 같은 몇몇 단어들을 제외하면 자주 마주칠 일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개인의 혼란을 야기해서 사회가 혼란에 빠질 리는 없겠죠.

덧글

  • 꼬깔 2008/01/10 23:28 #

    트랙백을 타고 왔습니다. 잘 읽어봤습니다. 어떤 말씀이신지 충분히 공감하고요. 개인적으로 저 글을 썼던 것은 일본을 거쳐 들어온 것을 모두 '일본식 발음'이라 얘기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말씀처럼 국제학회에서 발표를 해야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이건 옳고 저건 잘못된 것인데 이제서야 고쳐졌다는 식의 논조가 좀 꺼려진 것이 사실이었고요. 뭐 우리나라에서 얘기할 때는 게르마늄이라 읽고 영어를 사용할 때는 저머늄이라 발음해야 하겠고요. 이래저래 개인적인 생각을 썼던 것입니다.

    모쪼록 좋은 하루 되시고요.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 wolga 2008/01/10 23:35 #

    꼬깔님. 신문 기자들이 무식한 티를 많이 낸 것 같더군요. 전 일단 게르마늄/저마늄 혼용하고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흐르면 저마늄으로 통일했음 하긴 합니다. 가르칠 때는 저마늄이라고 가르치고요. 산자부가 좀 일을 급하게 하는 감이 있네요.
  • vvin85 2008/01/11 00:53 # 삭제

    나트륨까지 소듐으로 바꾼다는 말 듣고 황당했다. 그건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닌데 -_-
    그리고 영어식 발음을 쓰려면 영국식 발음을 쓰지 웬 미국식..
  • wolga 2008/01/11 09:34 #

    win85.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닌데 [헷갈리고 말고]의 문제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바꾸는 게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본다. 미국식 아니고 영국식 쓸 이유가 있나? 어차피 같은 외국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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