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

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저/이순희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세 권의 장하준 교수님 책을 읽었었습니다. [쾌도난마 한국경제], [사다리 걷어차기],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가 그것들이죠. 저는 위의 책들을 읽기 전에 시장 개방을 다소 긍정적으로 생각했었는데,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처음으로 읽고서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읽은 이유는 장하준 교수님의 논의를 긍정적으로 생각했고, 가급적 많은 텍스트를 접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난 이후의 결론은 간단합니다.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장하준 교수님의 다른 책들을 안 읽으시더라도, 이 책은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책을 넷 중에 가장 재미있게, 유익하게 읽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그만큼 중요한 주제들을 다채롭게 다루기 때문이겠죠. 특히 공기업(e.g. POSCO)과 특허법(e.g. AIDS치료제, 미키마우스), 그리고 민족성(e.g. 일본 및 독일)에 대한 논의들은 신선했습니다.

제게 가장 흥미로운 내용은 8장에 있었습니다. 8장 자이레 대 인도네시아는 인도네시아와 자이레(현 콩고 민주공화국)를 비교하면서 시작합니다. 인도네시아와 자이레 모두 부패한 지도자를 두었지만, 인도네시아는 자이레보다는 형편이 훨씬 나은 편이었죠. 자이레의 지도자는 자본을 해외로 빼돌렸지만, 인도네시아는 많은 돈이 국내에 남아 순환되었다고 합니다.[p255] 이런 면에서 보면 부정부패가 반드시 국가 개발을 저해한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물론, 부정부패는 비리를 저지른 자들이 더 많은 돈을 갖게 하니까, 분배의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여담으로 이공계 사람들이라면 매우 공감할 이야기를 하나 해보죠. 사실 전공 서적들은 매우 비쌉니다. International edition이 US only에 비해서 싸서 한국에서 international edition을 사서 미국으로 보내는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만, 어쨌거나 international도 부담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공부하는 데 책이 없으면 되겠습니까.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학력 신장을 최대화하기 어렵게 됩니다. 가난한 나라 출신들이 부자 나라 학생들에 비해 불리한 셈이죠. 이에 대한 이야기는 p220에서도 언급이 됩니다. 적어도 전공 서적은 더 싸져야 합니다. 종이 질이 좀 나쁘면 어떻습니까. 책은 보고 쓰는 게 중요하지 소장하는 게 더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덧글

  • 슈퍼컴 2009/11/15 16:26 # 삭제

    이렇게 참신하고 색다른 시각으로 사회의 모순을 꿰뚫어 주는 서적들을 접할 때마다 의아스러운 게 있는데요. 사실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대체로 제대로 된 민주주의에 있고 그 근본은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의 역발상에 가까운 냉철한 비판의식으로 본다면 민주주의, 인본주의는 왜 비판 없이 당연히 받아들여지는지가 오히려 의문입니다.

    인민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것도 사실 아무 근거 없는 억지이고,
    인간 본위라는 것도 대자연 속에서 인류의 자기 우월주의일 뿐입니다.

    우리는 대자연의 일부일 수밖에 없고 거스를 수도 없는 존재인데요. 그래서 저는 자연주의를 더 자연스럽게 인정하는데,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자연주의란 게 사실 그것도 결국 인본주의를 위한 웰빙 자연주의일 뿐이더군요. 제가 생각하는 자연주의는 그런 웰빙 자연주의가 아니고 대자연에서 공존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는 자연주의입니다. 자연에 순응한다는 것도 무농약, 무공해 그런 친환경이나 과거회귀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자연주의는 자연과 함께 인류의 진화나 퇴화를 맞이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자연주의입니다. 특히 인본주의와 대비되는 자연주의죠. 인민은 세상의 주인이 아니고, 인간 본위는 어리석은 발상이라는 거죠.
    물론, 인본주의에 기반한 민주주의가 계급차별, 국가차별, 지역차별, 인종차별, 성차별, 급기야 소수차별까지 타파하는데 강력한 논리적 무장을 해주지만, 애완동물을 배우자 이상으로 여겨 반려동물이라고 주장하는 사회가 오고 동물과 인간이 직접 대화가 가능하도록 실시간 번역해주는 IT 기기가 나온다면 더는 동물을 동물 취급하기 어렵고 이제 인본주의마저 또 다른 강력한 차별주의에 불과하다고 여겨질지 모릅니다. 그런 식으로 차별주의를 하나하나 갈아치우다 보면 인본주의야말로 인간으로서 가장 뛰어넘기 어려운 장벽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면에서 '나쁜 사마리아인들' 서적도 여전히 사상적으로 인본주의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해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 wolga 2009/11/15 19:21 #

    긴 답변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입장 차이 때문일 것 같은데, 저는 제시하신 사회가 오더라도 인본주의를 버려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저는 인간과 동물을 다르게 봐야 한다고 보며,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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